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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아

 

1991년 11월 22일

왜 하나님은 ‘탄생의 기적’이 일어난 직후 ‘죽음의 비밀’이 뒤따르도록 만드셨을까?

1991년 11월 22일 아침 8시 20분 아들은 세상의 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2분 뒤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아들의 첫 호흡만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탄생과 작별 이후, 며칠 간 내 머리 속은 온갖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아이는 누나들처럼 소프트볼 놀이를 좋아했을까? 공룡을 좋아했을까 아님 용을 좋아했을까? 아이는 과연 언제 행복하고 무섭고 화가 났을까?

그러나 한 가지 질문만은 끝까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하나님은 고작 2분만 살 수 있는 생명을 창조하셨을까?

세상에 발생하는 비극적인 사망사건의 대부분은 인간의 폭력성 또는 광기에 책임이 있다. 가령 잘못 겨냥된 총알이 한 아이를 사살한다거나, 자동차를 제어하지 못한 운전사가 길 가는 초등학생을 향해 돌진하는 등의 사고는 비통하면서도 어처구니 없다. 그러나 사망한 아이의 부모는 최소한 자신의 분노를 어디를 향해 쏘아야 할 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아들의 죽음에는 인간적 과실이 없었다. 의사들은 염색체이상인 파타우 증후군이 원인이라고 했다. 염색체 23쌍 중 한 쌍이 삼염색체를 갖는 장애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파타우 증후군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파타우 증후군이란 단어를 처음으로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그날 아내와 나는 아들이 초음파 모니터 속에서 흑백 유령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실버 박사가 초음파로 아이의 머리뼈와 대퇴골, 내부기관을 검사할 때 우리는 숨을 죽이고 태아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다 정상인가요?” 나는 물었다.

“우선 검사를 마무리한 후 자세하게 말씀드릴게요.” 의사가 대답을 회피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몇 분 후 의사는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태아가 심장 기형을 갖고 있어요. 대동맥이 제대로 팽창하지 않고 뇌의 일부분이 없는 상태예요. 내반족, 구순구개열, 척추갈림증일 수 있고요. 파타우 증후군이나 에드워드 증후군일 가능성이 높아요. 어떤 경우이든 아기가 살 가망성은 없어 보입니다. 만약 아기가 태어난다고 해도 오래 살지 못할거예요. 임신을 끝까지 유지하실 것인지 아닌지 지금 결정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의사가 무엇을 권하고 있는 지 알고 있었다. 먼저 아내가 말문을 열었다. 큰 충격에도 불구하고 수잔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저희 부부는 아기에게 생명을 주시고 다시 거둬가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믿어요. 아기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제 뱃속이라면 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네요. 아기가 만나게 될 세상이 오로지 제 뱃속이라면, 아기에게 최대한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게 저희 바람입니다.”

7월의 오후, 우리는 한없이 슬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수잔이 말했다. “과연 내가 출산의 고통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아기를 품에 안고 병원을 떠날 수도 없을텐데 말이야.”

뜨거운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찾아왔다. 우리는 아기의 병이 치유되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아기가 오래 사는 게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 생명의 숨결이라도 체험할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11월 22일 진통이 시작되었을 때 이러한 소원마저 불가능해 보였다. 진통이 심해질수록 아기의 상태도 악화되었던 것이다. “아기가 살아서 나올 수 있도록 시도해 볼까요?” 간호사가 물었다. “네, 하지만 되도록이면 수술 없이 해주세요.” 수잔이 대답했다. 간호사들이 산소를 공급하며 수잔을 다른 자세로 눕히니 곧 아기의 상태가 호전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아기가 산도를 빠져 나왔다. 의사는 탯줄을 자른 후 수잔의 가슴 위에 아이를 눕혔다. 아기의 피부는 건강한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흉곽이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숨을 쉬고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기의 피부가 파랗게 변했다. 우리는 아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환영인사와 동시에 작별인사를 속삭여주었고, 얼마나 사랑하는 지도 말해주었다. 그리고 의사는 너무도 빨리, 아기가 죽었다고 말했다.

몇 분 후 목사님과 부모님, 아이들이 방에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를 껴안으며 함께 울었다. 그리고 돌아가며 아들을 안아보았다. 나는 심장의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괴로웠다. 죽음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고,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거대한 존재였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마음을 무척 강하게 짓눌렀다. 그러나 이 슬픔은 눈물과 고통이 혼합된 상실 그 이상의 것이었다.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슬픔이었다.

앞서 세 딸이 태어났을 때 나는 ‘탄생의 기적’을 느꼈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이 세상의 빛을 바라보는 성스러운 순간이었다. ‘생명의 입김’이 처음으로 아기들의 폐를 채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토비의 경우 이 순간이 두 배나 강렬했다.

“영원이 세상을 십자가에 매단 것 같아요.” 이것이 내가 목사님께 말한 전부였다.

“아기 이름이 있나요?” 간호사가 물었다. “토비” 수잔이 대답했다. “토비아의 줄임말이에요. ‘하나님은 선하다’란 뜻으로 성경 속 이름이에요.”

토비아의 병을 알기 전 나는 크리스토퍼 드 빙크(Christopher de Vinck)가 쓴 책을 읽은 적 있다. 더 파워 오브 더 파워리스(The Power of the Powerless).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형 올리버에게 배운 점을 이야기한다. 올리버는 중증 지적장애가 있다. 우리 딸 맨디 역시 중증 장애로 인해 주변 환경에 적응을 잘 못하기 때문에 나는 이 책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렸다. 토비의 출생일 및 사망일 3개월 후 맨디 역시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맨디의 두 번째 생일 2주 전에.

아이나 어른이 발견할 수 있는 대단한 사실 중 하나는, 모든 것은 영혼을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드 빙크는 적는다. 사과를 반으로 자르면 사과 씨를 발견할 수 있다. 호두껍질을 쪼개면 안에 들어 있는 호두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장난감 청진기로 자신의 심장박동을 들어보기도 한다. 우리가 오로지 외면만 바라보고 있으면 내부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 상 16:7)”. 세상은 우리에게 입은 옷과 용모로 타인을 평가해라고 가르친다. 정치적 캠페인은 각종 언론가, 텔레비전 감독,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교육방식은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것에 기초를 둔다. 우리는 오로지 외모가 중요하다고 믿도록 끊임없이 유혹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내면과 가슴, 영혼을 등한시한다.

내 아이들은 모두 영혼을 갖고 있다. 첫째와 둘째와 함께 있으면 나는 아이들을 뚫어볼 수 있다. 맨디의 경우 우유빛의 막이 아이를 감싸고 있었다. 토비의 경우 나는 아이를 뚫어볼 수 있는 기회 조차 갖지 못했다.

그렇지만 맨디와 토비 모두 영혼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외면이 불완전해도 사람의 내면은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하는 법이다.

토비와 맨디를 보내고 얼마되지 않아 7살짜리 딸 스태이시가 이야기 했다. “맨디와 토비는 너무 바빠요. 우리 집을 열심히 짓고 있고 그의 왕위를 지키고 있거든요.” 여태껏 이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던 아이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라 나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천국에서의 활동을 묘사하는 구절에는 지금껏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딸이 이야기한 것이 성경 구절과 일치할까?

그리고 우리는 천국이란 여유와 안락함이 지배하는 곳일 뿐 만 아니라 부지런히 활동하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들을 위한 성을 예비하시며(히브리서 11:16), 그 곳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 온전해질 것이다(히브리서 11:40).

예수님은 천국에 집이 많이 있을 것이며,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겠다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4). 그러니까 훗날 거처를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천국에서 행할 과업 중 하나인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왕위를 지킨다’라는 문장이 나는 가장 궁금했다. 특별경호대 같은 것일까? 의례적인 아동집회(예수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 자신에게 오라고 요구했던 아이들)? 아니면 예수님이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생각하셨던 명예의 자리? 나는 맨디와 토비보다 나중에 된 사람들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왕위군대가 의식이 아니라 실제라면? 우리는 게리빔이 바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천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니엘서 10장은 영적으로 타락한 존재와 전쟁하는 미가엘 천사를 묘사한다. 에베소서 6장 12절은 하늘에 있는 악령들에 대항하는 전투를 언급한다. 어쩌면 이 전투에 투입된 영적 군인들 중 한 명이 토비가 아닐까? 요한계시록은 천상 군대를 묘사한다(요한계시록 19:19). 어쩌면 토비는 전투를 벌이는 천상 존재들과 함께 우리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 모든 것은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천국이란 활발히 일을 해야 하는 장소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영원과 관련해 사도 요한이 보았던 환영은 우리의 기대를 시사한다.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 그들이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요한계시록 22:3-5)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식으로 모시게 될 지, 하나님이 나라를 통치하시는데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 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사명은 우리가 지구에서 행하는 직업적 성공보다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 과연 어떤 것일까?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을 시작하는 순간, 내가 바로 그 일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일까? 아님, 지구에서의 업적이 아니라 천국에서 성취할 역할을 위해 지어졌음을 깨닫는 것일까?

왜 하나님은 오직 2분만 살 수 있는 아기를 창조하셨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맨디가 2년만 살도록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내가 40년 또는 그 이상만을 살도록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영원을 위해 토비를 그리고 우리 모두를 창조하신 분이다.

마샬 쉘리

 

 

마지막 업데이트: 2019.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