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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녹

 

아녹 무뇌증 아기

2000년 7월 18일 ~ 2000년 7월 19일

2000년 7월 18일 우리 넷째 아녹이 태어났다. 13시간 후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오늘 나는, 아녹과 함께한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체험했는지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임신 20주까지는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제 중요한 초음파 검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자궁에 이상이 관찰된다며, 이는 분만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의사는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를 CHUV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대학병원)의 어느 한 전문의에게 보냈다.

그 외에는 모든 게 정상이라고 했다. 아기 머리가 너무 밑에 있는 탓에 머리만은 검사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 점은 분명 CHUV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2주 후, 가뿐한 마음으로 초음파 검진 전문의인 비알 박사에게 갔다. 추측되는 자궁이상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으나 이상하게도 검사는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비알 박사는 아기의 머리가 걱정된다고 했다. 우선 옷을 다시 챙겨 입으라며, 그리고 난 후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고 했다. "아기가 매우 심각한 기형을 갖고 있어요. 무뇌증이에요. 그 말은, 머리뼈와 두피가 없다는 거예요. 이로 인해 뇌가 양수에 노출되어 완전히 파괴되지요. 뇌 대신에 조직 덩어리만 남아 있어요. 이러한 태아는 살 가망성이 없고, 출생 후 빠른 시간내 사망하지요." 그는 자신의 진단결과가 확실하며, 치유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럼 이제는?"

내가 원한다면 임신 중절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아니요, 그건 말도 안 돼요." 내 말의 영향력을 미처 이해하진 못했지만, 내게 한 가지 만은 분명했다. 생사의 결정권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게다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언제든지 기적을 일으킬 수 있으시다. 이 확고한 대답에 의사는 그저 말했다. "그건 오로지 당신의 결정이에요." 남아있는 임신기간과 출산은 앞으로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며, 유일한 위험요소는 양수의 과잉 생산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을 확인하고 조절하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고 했다. 더 궁금한 점이 있는지 그는 물었다. 내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지금 현실인지 꿈인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제대로 된 질문을 생각해내겠는가?

비알 박사는 자신에게 언제든지 연락해도 된다며, 내가 원한다면 자신의 병원에서 계속 검진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집에 도착해서야 크리스토프의 품에 안겨 목 놓아 울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에 가장 먼저 안심했다. 나와 반대로 그는 걱정을 많이 했나보다. 이 '욥의 고난'은 그 또한 낙담시키지 않았다. 내가 임신을 끝까지 유지할 거란 걸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우리는 하나님께 "왜요?" 라고 묻지 않기로 다짐했다. 어차피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순 없을테니까. 첫째 딸 아나이스는 내게 무슨 이상이 있다는 걸 눈치챈 듯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도 뱃속의 아기가 출생 후 죽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우리 기도하자. 예수님이 치유해 주실 테니까." 그렇다, 이렇게 우리는 항상 아이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 점을 쉽게 믿을 수가 없다.

저녁에 의사인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좀 더 많은 것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삼촌은, 무뇌증 아기는 정말 살 가망성이 없다는 사실 외에 더 이상의 의학적 사항을 전달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이 아기에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권리를 주라고 격려했다. 앞으로 되도록 평범하게 살아가라고 했다. 그의 말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진단을 받은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죽음을 선고받은 존재를 품에 안고서 앞으로 남은 4개월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였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은 내 삶에 있어 최악의 밤이었던 것 같다. 거의 잘 수 없었고, 내 생각들은 사로 잡혀있었다. 다음 날, 아나이스(6.5살)와 막스(5살), 타베아(3살)를 챙기기 위해 완전 녹초가 되어 일어났다.

목사님 내외가 우리집에 들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우리 아기를 축복해 주기시를 함께 기도했다. 그러나 치유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는 아니였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산파에게도 연락을 했다. 삼촌과 같이 그녀도, 내가 되도록이면 평범하게 계속 살아가라고, 건강한 아기에게 하듯 뱃속의 아기에게 모든 것을 주라고 격려했다. 내 아기는 다른 아기들처럼 사랑받고 보살핌 받을 똑같은 자격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는 출산을 대비해 앞으로 남은 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무뇌증 관련 홈페이지 주소 하나를 주었다. 나는 거기에서 처음으로 무뇌증 아기들 사진을 보았다. 그 홈페이지에서 읽은 각종 경험담은 곧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 아기를 낳고자 하는 것은 아주 무모한 짓이 아니었다. 세상이 우리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만은 이해해 주신다. 그것을 하나님은 성경구절을 통해 거의 매일 보여주셨다. 그 성경구절들은 실제로 내 마음을 움직였고, 구체적으로 나를 도왔고 용기를 주었다. 그때 다음과 같은 구절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전서 16: 53-57)

바로 이 구절에 내 힘과 희망이 들어있었다! 이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내 앞에 놓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기적을 향한 희망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이 아기가 부활해 영원한 삶을 누린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가소로운 (그때까지 살 수 있다면야) 80년이 영원 앞에서 무엇이란 말인가? 영원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이제 아기 이름을 짓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제대로 보내고자, 우리는 아기의 성별을 알고자 했다. 다음 검진 때 딸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 딸을 ‘아녹’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날 병원에서의 시간은 혼란스럽게 흘러갔다. 의사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오로지 그는 자신의 의견을 내게 전달하려고 했다. 오래전부터 우리가 아녹을 낳기로 결정한 것을 그는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날이 내가 그를 찾아간 마지막 날이었다. 남아있는 검진을 받기 위해 비알 박사에게 갔다. 그 곳에서 나는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고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아녹이란 이름을 택한 이유는, 그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찾아보진 않았지만 이름 자체가 우리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이름의 의미를 분석해보자면 이렇다. '아녹(Anouk)'은 은혜라는 의미의 '안네(Anne)'에서 변화된 형태이다. 은혜란 사실 우리가 받을만 한 한 가치가 없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받는 것이다. 첫째 딸 이름인 아나이스(Anaïs) 역시 동일한 뿌리를 갖고 있다. 아나이스는 두 차례의 유산 끝에 얻은 특별한 선물이었다. 그리고 지금 또 선물을? 그렇다, 다른 의미에서의 선물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척 특별하고 귀중한 것을 선물해주셨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평화였다. 모든 것이 우리를 저항했지만 나는 괜찮았다. 그리고 아녹 앞에 놓인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였고 그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아녹을 치유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녹을 그렇게 하시리라 믿지는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에게 용기를 줘야한다는 사명감에, 하나님이 비슷한 경우에 행하신 치유의 기적에 대해 보고했다. 그들의 말에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바울이 자신의 병이 치유되길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역시 내 자신에게도 적용시켰다. 이제 임신의 모든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딸은 많이 움직였는데, 움직임 하나하나가 무척 소중했다. 하루는 딸의 움직임을 종일 느끼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딸의 삶 하루하루가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불현듯 깨달았다. '만약 지금 딸이 죽은 것이라면?' 이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후 다시 태동을 느꼈을 때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

똑같은 경험을 가진 부모들을 찾는 과정에서 문이란 문은 다 두들겼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무뇌증은 상당히 드물다. 둘째, 무뇌증 진단 후 거의 모든 여성들은 즉시 아기를 낙태시킨다. 내 마지막 희망의 서광은 공고문이었다. 나는 그 공고문을 어느 한 기독교 가족잡지에 실었는데, 이는 나를 실망시키기 않았다. 공고문이 발행된 후, 세 가족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들 역시 그러한 아기를 출산한 적이 있었다. 똑같은 일을 겪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그들의 경험담은 나를 격려했고 나에게 활기를 불어 일으켰다. 게다가 나는 '임마누엘, 무뇌증 아기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 (Immanuel, die Geschichte der Geburt eines anenzephalen Kindes)' 란 책을 소개 받았다. 이 책에서 신학자 마르쿠스 란(Markus Rahn) 역시 글을 썼는데, 인간존엄과 관련하여 서술한 부분은 내가 항상 느꼈던 점을 말하고 있었다.

인간은 가령 신체크기, 지능, 수행능력, 연령 등 다양한 면에서 서로 구분을 짓는다. 그리고 단번에 전형적으로 인간적인 부분은 많은 동물과 일치한다. 직립보행, 도구 사용, 언어. 그렇다, 다 자란 동물들은 신생아와 소아들을 몇 가지 면모에서 능가한다. 그러나 신생아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인간이다, 그것도 성인보다 못한 인간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다움이란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감소하지도 증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의식이 없는 자, 정신 지체 장애자도 건강한 사람에 비해 덜 한 인간이 아니다. 노인도 소아에 비해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인간이다.

인간다움이란 불변적이다. 그것은 전 생애를 거쳐 그대로이다. 하지만 인간다움은 언제 시작하는가? 출생 때? 출생은 그야말로 한 인간의 삶에서 결정적인 분기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그 와중에 인간의 본질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가능한 답은 하나다. <인간은 처음부터 인간이다>. 인간다움은 출생 후에도 불변적이므로, 출생 전에도 그래야 한다. 인간다움은 출생 후 개개인의 특성과 무관함으로, 출생 전에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 인간은 인간이 되기 위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성장한다. 이 성장은 수정 순간부터 죽음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비알 박사는 병원의 신생아과 전문의와 만나도록 해주었다. 우리는 그에게 우리 딸의 짦은 생을 어떻게 상상하는지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몇가지 원하는 사항을 털어놓았고, 이는 바로 받아들여졌다. 이 대화는 나를 흥분시켰다. 아녹의 출생까지 불과 몇 주 밖에 안 남았다는 것을, 그때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한 순간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무뇌증 아기는 자연분만하기 어렵다. 뇌의 부재로 인해 호르몬이 생산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알 박사는 임신 38주 초에 출산 여부를 한번 결정해보자고 제안했다. 그 시기에 아녹은 완전히 형성되어 있고 그 후 몸무게만 증가할 뿐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임신기간이 2주 줄어든다는 생각에 안심했다. 하지만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마지막 날까지 끝까지 버티고 싶은 바람이 커져만 갔다. 무엇보다도 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적절한 시기에 이끌어 주시기를 바랬다. 아녹과 나, 크리스토프,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게 최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랬다. 모든 일이 문제없이 ‘펼쳐질수록’ 아녹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멋지게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주 실지적인 사항들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벌어진 상처를 보고 어떻게 해야할까? 아녹이 마실 수는 있을까?'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이사야 8:13-14)

이 구절을 읽고난 후, 아까와 같은 사항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언제든지 안전한 하나님 곁으로 피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성경구절이 담긴 카세트와 찬송가를 들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와 언약을 항상 상기시켰고 내가 아녹을 하나님의 눈으로, 그러니까 마음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분만일을 앞두고 며칠 동안 상당히 힘들었다. 시간은 엉금엉금 지나갔고, 다가올 출산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오죽했으면 나는 홀로 어느 섬에 있었으면 했다. 꽤 많은 주변분들이 나를 성가시게 했다. 그들은 사랑스러웠고 친절했으며 내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며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나는 혼자 있고 싶었다. 내 마음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하루에도 수십번 오르락 내리락 거렸고, 미친 듯이 기뻤다가도 죽을만큼 슬퍼졌다. 육체적으로는 건강했다. 출산 전의 당김이나 압력 같은 증상이 없었다. 육체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정신은 심각한 혼란 상태에 있었다. 걱정이 되면서 내 앞 일이 두려웠다. 원래 분만 자체도 만만치 않은 법인데, 나의 경우 “출산 이후”가 워낙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한 순간,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어떻게 느끼셨을지 이해가 갔다. 낙담 그리고 두려움. 하지만 하나님이 거기에 계셨다. 하나님은 반드시 고통을 피하도록 도와주시지 않고, 그 고통을 통해 도와주신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예정일 하루 전, 비알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분만유도를 부탁했다. 지난 달까지만 하더라도 자연분만이 가능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제 더 오래 기다릴 수가 없었다. 너무나 힘들었다. 다음 날인 7월 18일 병실에 도착하니 달력 속 다음의 성경구절이 우리를 맞이했다.

"내가 정녕히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앞에서 경외하는 자가 잘될 것이요"
(전도서 8:12)

얼마나 대단한 언약인가! 내 두려움은 물러났고, 다시는 떠나지 않을 평화가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하나하나를 들어주셨다. 분만은 아주 짧고 지극히 정상적이고 순탄하게 이루어졌고, 아녹은 오후 5시 21분 세상의 빛을 보았다. 산파가 아녹에게 조그마한 모자를 씌워주고 난 후에야 나는 내 딸을 드디어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아녹은 살아 있었다!

아녹은 숨쉬기 시작할까?

나를 둘러싼 세상이 멈춰섰다. 오로지 소중한 것은 내 딸이었다. 딸과 함께 있는 매 순간이 참으로 소중했고 감사했다. 아녹이 곧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나는 환호할 수 밖에 있었다. 우리를 둘러싼 방은 기쁨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것은 기쁨 그리고 평화였다. 아녹은 망설이듯 숨쉬기 시작하더니 갈수록 규칙적으로 호흡했다.

나는 아녹을 더 가까이 바라보았다. 굉장히 작아 보였다. 특히 머리가 매우 작았다. 내가 특별히 신경써서 작게 뜨개질 한 모자도 아녹에게 너무 클 정도였다. 당장은 모자 안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아녹의 나머지 부분들을 질리도록 바라보았다. 나는 내 딸을 보고 있었다. 심한 기형을 가진 아기, 하지만 가장 먼저 내 딸로서의 아녹을 보고 있었다. 아녹은 나머지 세 명의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와 똑같이 생겼다. 모두들 헷갈릴 정도로 비슷했는데, 아녹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나이스와 막스, 타베아도 막내 동생을 만나기 위해 왔다. 아이들은 기계들로 가득 찬 분만실에 위축되었고, 엄마가 하얀 침대에 누워서 일어설 수 없으니 의아해했다. 아이들은 호기심을 갖고 아녹을 바라보았고 온갖 질문을 했다. 아무도 아녹을 안으려고는 하지 않았다. 아녹의 자줏빛 피부가 낯설게 보였을 것이다. 아이들이 훗날 아녹을 잘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사진을 남겼다.

"가족에게 이토록 따뜻한 환영을 받다니, 따님은 정말 행운아예요." 어느 한 산파가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 분만과정에 함께 할 수 있어 고마웠다고 했다. 소아과 의사도 우리의 자세와 행동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하나님에 대해 말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이 바로 우리 곁에 있음을 모두들 느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이토록 완벽하게 이끄셨다!

부모님이 다녀가신 후, 나와 아녹은 단둘이 있었다. 아녹은 듣지 못했다. 파란 눈을 크게 떴지만 보지 못했다. 출생 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빠는 반사’ 역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녹에게 젖을 먹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보여준 사랑에는 분명하게 반응했다. 사랑은 가슴으로 주고 받는 것이기에, 뇌가 없어도 된다.

이제 나는, 어느새 피로 젖은 모자 아래를 쳐다 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상처는 아름답진 않았지만 그 또한 내 딸의 한 부분이기에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병실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아녹을 내 품에 안을 수 있어 정말 기뻤다. 내 딸이 살아있어 정말 기뻤다. 하지만 아녹이 죽더라도 나는 기쁠 것이라고 시인해야 했다. 아녹은 살 가망성이 없었다. 이 점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새벽 2시경 아녹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아녹의 호흡이 멎었다. 나는 소아과 의사를 불렀다. 의사가 가래를 제거하고 나니 아녹은 다시 진정했다. 하지만 아녹은 전보다 더 힘들게, 갈수록 천천히 호흡했다. 아침 6시 반 즈음 나와 크리스토프는 아녹을 위해 기도하며, 아녹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넘겨주었다. 그리고 아녹은 마지막으로 한번 숨을 쉬고 영영 숨을 거두었다.

아녹은 평화롭게 잠이 들었다.

더 이상의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기 위해서 의학적 증명될 필요가 없었다. 내 품에는 빈 껍질이 누워 있었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슬픔에 겨워서가 아니었다. 슬프긴 했다. 하지만 아녹의 영혼이 이제 하나님 곁에 있다는 확신 때문에 기뻤다. 크리스토프도 울었다. 그의 울음은 나를 위로했다.

아녹을 씻기고 옷 입히기 전, 우리는 그의 손도장과 발도장을 찍었다. 그에 대한 추억을 최대한 많이 가지는 것은 내게 중요했다. 추억을 버리는 것은 추후에 가능하겠지만 보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 병원에 미련 남는 것이 없었다. 아이들이 집에서 우리를 필요로 했다. 아녹을 위해 우리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었다. 병원을 떠나면서도 울고 차 안에서도 울었다. 집에서 티베아가 아녹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을 때도 눈물이 터졌다. 크리넥스 한 통을 안고서 남은 하루를 보냈다. 오로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했다. 쓰라림도, 한탄도 없었다. 내가 겪은 것에 대해 단 일 초도 후회하지 않았다. 모든 슬픔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뻤다. 왜냐하면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나는 이제야 어느 한 여성이 임신 때 내게 써 준 다음의 문장을 이해한다. "문제를 만드는 것은 실천된 사랑이 아니라, 사랑으로부터 박탈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녹에게 우리의 모든 사랑을 주었고, 이제 아녹을 가게 할 수 있다.

모니카 재퀴어, 스위스
Monika Jaquier, Switz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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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16.03.11